Substratum
2026年/油彩/1622×3910×40mm
Substratum은 이번 전시의 모든 내용을 아우르는 대표작이다. 이번 전시에서 큰 주제가 되는 대지와 해양, 그리고 그 모든 존재를 비추는 빛의 감각을 하나의 장면으로 응축한 작업이다. 땅과 하늘, 바다라는 익숙한 경계가 뒤집히고 뒤섞인 채 공존하는, 현실의 표면 너머 어딘가에 존재할 법한 세계를 상상하며 시작되었다. 화면을 이루는 형상들은 대지와 토양, 식물과 생명체 등 현실 세계에서 발견한 자연 만물의 파편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이들은 본래의 장소와 질서에서 떨어져 나와 서로 얽히고 중첩되며 새로운 생태계를 형성한다.
《Substratum》是统摄本次展览全部内容的代表作。它将本次展览的重要主题——大地与海洋,以及照亮其中一切存在的光的感觉——凝缩为一个场景。这件作品始于一种想象:在现实表面之外的某处,也许存在着这样一个世界,土地、天空与海洋这些熟悉的边界在其中被颠覆、混杂而共存。构成画面的形象出发于现实世界中发现的自然万物的碎片,如大地与土壤、植物与生命体。然而它们脱离了原本的场所与秩序,彼此缠绕、重叠,形成新的生态系统。
화면은 땅 속 깊은 곳의 뿌리와 생태계로 보이는 동시에 바다속을 연상시킨다. 또한 하늘과 땅이 전복된 공간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모호함을 통해 우리가 세계를 구분하는 경계가 사라진 상태를 그리고자 했다. 땅과 바다, 식물과 동물, 생명과 무생물처럼 서로 분리되어 있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사실은 하나의 세계를 구성하는 물질이며, 끊임없이 다른 형태로 뒤섞이고 순환하고 있다.
画面既像是地底深处的根系与生态,同时又令人联想到海中。它也可以被感受为天与地颠倒的空间。我希望通过这种模糊性,描绘出我们区分世界的边界消失后的状态。土地与海洋、植物与动物、生命与无生物——这些被认为彼此分离的事物,其实都是构成同一个世界的物质,不断混杂为其他形态并循环着。
그 안에서 새를 닮은 형상은 화면 어딘가를 주시한다. 그것은 특정한 생명체라기보다 이 낯선 세계를 관조하는 존재이자, 세계 곳곳에 깃든 어떤 영혼의 흔적처럼 자리한다. 이 시선으로 인해 풍경은 단순히 버려진 파편들이 모인 장소가 아니라, 스스로 감각하고 살아 움직이는 하나의 유기체처럼 변한다.
在其中,一个形似鸟的形象注视着画面的某处。与其说它是特定的生命体,不如说它是静观这个陌生世界的存在,如同栖息于世界各处的某种灵魂的痕迹。因这道目光,风景不再只是被遗弃的碎片汇聚之地,而转变为一个自行感知、活着并运动的有机体。
제목 Substratum은 표면 아래에 놓인 '기층', 혹은 어떤 존재를 성립시키는 근원적인 토대를 의미한다. 내가 상상한 것은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세계의 아래, 보이는 표면 너머에 잠재된 또 하나의 세계이다. 그곳에서는 현실에서 분리되어 있던 존재들의 경계가 느슨해지고, 흩어진 파편들이 다시 관계를 맺는다. Substratum은 그렇게 세계의 밑바닥에서 서로 다른 존재들이 하나의 풍경으로 합일되는 순간, 혹은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세계의 원형을 그려낸다.
标题 Substratum 意指位于表面之下的"基层",或使某种存在得以成立的根源性基底。我所想象的,是我们脚下的世界之下、可见表面之外潜藏的另一个世界。在那里,现实中彼此分离的存在之间的边界变得松弛,散落的碎片重新结成关系。《Substratum》所描绘的,正是在世界的底部,不同的存在合一为一片风景的瞬间,或是尚未被命名的世界的原型。
Returning Without Arrival
2026年/油彩/970×970×35mm
화면에는 가재와 물고기처럼 해양을 연상시키는 생명체들이 등장하지만, 그 사이에는 날개를 지니고 있는 형상이 함께 존재한다. 절벽이나 암석처럼 보이는 표면은 동시에 깊은 바닷속의 지형처럼 느껴지고, 물과 땅의 이미지가 서로 침투하며 하나의 불분명한 공간을 만들어낸다.
画面中出现了如螯虾与鱼一般令人联想到海洋的生命体,而在它们之间,也一同存在着拥有翅膀的形象。看似悬崖或岩石的表面,同时又给人以深海地形之感,水与土地的意象彼此渗透,造出一个含混不清的空间。
서로 다른 장소에 속해 있을 법한 존재들은 이곳에서 자연스럽게 한데 모인다. 그들은 어느 한 방향을 향해 움직이는 듯하면서도 명확한 목적지에 도달하지 않고, 화면 안을 천천히 맴돌고 유영한다. 몇몇 형상은 같은 곳을 응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시선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는 드러나지 않는다. 이 미묘한 방향성은 화면 안에 보이지 않는 중심이 존재하는 듯한 감각을 만든다.
本应分属不同场所的存在,在这里自然地聚集到一处。它们看似朝着某一个方向移动,却并未抵达明确的目的地,而是在画面中缓缓盘旋、游动。有几个形象看上去注视着同一处,但那视线的尽头有什么,并未被揭示。这种微妙的方向感,制造出画面中仿佛存在一个看不见的中心的感觉。
나는 이 풍경이 구체적인 장소로 확정되기보다, 바닷속이면서 절벽이고 동시에 어느 곳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는 공간으로 남기를 바랐다. 물속을 헤엄치는 것인지, 땅 위를 이동하는 것인지조차 모호한 채 생명체들은 서로의 주변을 지나고, 모이고, 다시 흩어진다. 서로 다른 세계에서 온 파편들은 그렇게 잠시 같은 흐름 안에 놓인다.
比起让这片风景被确定为某个具体的场所,我更希望它留存为一个既是海中又是悬崖、同时又不完全属于任何地方的空间。连究竟是在水中游动还是在地上移动都含混不清,生命体们从彼此身旁经过、聚拢,又再度散开。来自不同世界的碎片,就这样暂时被置于同一道流动之中。
제목 Returning Without Arrival은 돌아가고 있지만 끝내 도착하지 않는 움직임을 암시한다. 이들에게 돌아간다는 것은 반드시 이전의 장소로 되돌아가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어쩌면 끊임없이 이동하고 순환하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귀환일 수 있다. 작품은 도착점이 사라진 세계에서 서로 다른 존재들이 같은 방향을 감지하고 그 주변을 유영하는 순간을 그린다.
标题 Returning Without Arrival 暗示着一种正在归返、却终究不抵达的运动。对它们而言,归返并不一定意味着回到从前的场所。或许,不断移动与循环的过程本身,就是一种归返。作品描绘的是:在终点已然消失的世界里,不同的存在感知到同一个方向,并在其周围游动的瞬间。
Ripening
2026年/油彩/1033×970×35mm
Ripening은 무언가가 내부에서 천천히 차오르고, 익어가며 다른 상태로 변화하는 순간을 상상하며 시작한 작업이다. 화면 속 형상들은 식물이나 열매, 곤충과 조직처럼 익숙한 생명체의 일부를 떠올리게 하지만, 어느 하나의 대상으로 명확하게 규정되지는 않는다. 서로 다른 파편들은 흘러내리고, 매달리고, 표면을 뚫고 자라나는 듯한 모습으로 뒤엉키며 하나의 낯선 생태를 만들어낸다.
《Ripening》始于对某种事物自内部缓缓充盈、成熟并转变为另一种状态的瞬间的想象。画面中的形象令人想起植物、果实、昆虫与组织等熟悉的生命体的局部,却又不被明确规定为其中任何一种对象。彼此不同的碎片以流淌、悬垂、仿佛穿透表面生长的姿态相互缠绕,造出一种陌生的生态。
'익는다'는 것은 완성을 향해가는 과정인 동시에, 가장 충만해진 상태에서 곧 다른 형태로 넘어가게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열매가 익은 뒤 떨어지고 부패하여 다시 토양의 일부가 되듯, 자연에서 성숙과 소멸은 서로 분리된 사건이 아니라 하나의 순환 안에 놓여 있다. 화면의 짙은 붉은색과 유기적인 형상들 역시 풍요롭고 생명력 있는 동시에 어딘가 과잉되고 기이한 감각을 품고 있다.
"成熟"既是走向完成的过程,同时也是在最为充盈的状态下即将转入另一种形态的瞬间。正如果实成熟后坠落、腐败,再度成为土壤的一部分,在自然之中,成熟与消亡并非彼此分离的事件,而是置于同一个循环之内。画面浓郁的红色与有机的形象,同样既丰饶而富有生命力,又怀有某种过剩而奇异的感觉。
제목 Ripening은 이러한 변화의 중간 상태를 가리킨다. 아직 완전히 도달하지도, 사라지지도 않은 채 내부에서 계속해서 변화가 진행되고 있는 시간이다. 이 작품에서 생명은 고정된 형태로 존재하기보다 자라고, 익고, 흘러내리고, 다시 다른 무언가가 되어가는 과정으로 나타난다.
标题 Ripening 指向这种变化的中间状态。那是尚未完全抵达、也尚未消失,而内部仍在持续变化的时间。在这件作品中,生命与其说是以固定的形态存在,不如说是显现为生长、成熟、流淌,并再度成为另一种事物的过程。
The Unfinished Habitat
2026年/油彩/各727×530×35mm(四件连作)
The Unfinished Habitat은 인간의 세계에서 발견한 비생물적 파편들을 조합하며 만들어진 네 점의 연작이다. 건축물과 음식, 옷의 주름, 사물의 표면 등 일상에서 수집한 이미지들은 본래의 맥락에서 벗어나 서로 결합하며 낯선 풍경을 만들어낸다. 흥미롭게도 인간의 흔적으로 구성된 이 장면은 오히려 무너져가는 건축물이나 폐허, 혹은 아직 생명이 정착하지 않은 행성처럼 황폐하고 불완전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The Unfinished Habitat》是组合人类世界中发现的非生物性碎片而成的四件连作。建筑与食物、衣物的褶皱、事物的表面等日常收集来的图像,脱离原本的脉络而彼此结合,造出陌生的风景。有趣的是,这个由人类痕迹构成的场景,反而呈现为如同崩塌中的建筑或废墟、又或是生命尚未定居的行星一般荒芜而不完整的样貌。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번민하며, 현실의 파편들을 재조합해 내가 염원하는 이상적인 장면에 가까워지고자 했다. 그러나 그 과정 끝에 나타난 것은 완전하고 조화로운 세계라기보다 황폐함과 생명력이 기묘하게 공존하는 풍경이었다. 무너지고 소멸해가는 듯한 공간 속에서도 무언가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다른 가능성을 향해 나아간다. 결국 이 작업은 이상을 향한 염원과 현실의 불완전함, 소멸과 생성이 동시에 뒤엉켜 있는 하나의 혼돈적인 장면으로 남게 되었다.
在理想与现实之间不断苦恼的同时,我试图重组现实的碎片,以接近自己所渴望的理想场景。然而这一过程的尽头所呈现的,与其说是完整而和谐的世界,不如说是荒芜与生命力奇妙共存的风景。即便在看似崩塌、消亡的空间之中,仍有某种事物不断运动,朝着别的可能性前行。最终,这件作品留存为一个混沌的场景:对理想的渴望与现实的不完整,消亡与生成,同时交缠于其中。
네 개의 화면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구(球)는 달걀노른자의 둥근 파편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원래의 맥락에서 떨어져 나온 구는 더 이상 하나의 대상으로 규정되지 않는다. 알이나 구슬이 될 수도, 인간이나 생명의 흔적으로 읽힐 수도 있다. 정지된 듯한 풍경과 달리 구들은 화면 곳곳을 떠돌며 다른 장소를 찾아 이동하는 방랑자처럼 존재한다. 황폐한 공간 속에서도 이들의 움직임은 미세한 생동감과 아직 소멸하지 않은 가능성을 만들어낸다.
在四个画面中反复出现的球,出发于蛋黄的圆形碎片。然而脱离原本脉络的球,已不再被规定为某一个对象。它既可能成为卵或珠子,也可能被读作人类或生命的痕迹。与看似静止的风景不同,这些球在画面各处漂游,如同为寻找另一个场所而移动的流浪者般存在着。即便身处荒芜的空间,它们的运动也造出细微的生动感,以及尚未消亡的可能性。
전시장에서 이 작품은 자연의 파편으로 이루어진 Substratum과 마주한다. 두 작품은 각각 인간과 자연이라는 서로 다른 세계에서 출발하지만, 결국 하나의 공간 안에서 서로 얽혀 존재한다. 자연과 인간을 대립시키기보다, 서로 다른 존재들이 같은 세계를 구성하며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는 두 개의 풍경으로 바라볼 수 있다.
在展场中,这件作品与由自然碎片构成的《Substratum》相对而立。两件作品分别出发于人类与自然这两个不同的世界,最终却在同一个空间中彼此缠绕地存在。与其让自然与人类相互对立,不如将它们看作两片风景:不同的存在共同构成同一个世界,并不断相互影响。
Shelter
2026年/油彩/530×409×35mm
이번 전시에서 반복해서 등장하는 무언가의 존재들은 서로 다른 환경과 세계에서 출발하지만, 주변의 것들과 관계를 맺으며 새로운 형태와 장소를 만들어간다. Shelter는 그 흐름 속에서, 흩어진 것들이 서로 얽혀 하나의 작은 세계를 이루고 그 안에서 무언가를 품고 지키려는 모습을 상상하며 시작한 작업이다.
本次展览中反复出现的某些存在,虽然出发于彼此不同的环境与世界,却与周围的事物结成关系,不断造出新的形态与场所。《Shelter》始于对这一流动之中的想象:散落之物彼此缠绕,构成一个小小的世界,并在其中怀抱与守护着什么。
화면의 중심에는 둥지처럼 응축된 형태와 그 위를 감싸듯 자리한 형상이 존재한다. 그것은 특정한 생명체라기보다, 자신의 안쪽에 있는 무언가를 보호하고 보살피는 존재처럼 보인다. 주변의 붉고 거친 표면과 뒤엉킨 선들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을 연상시키는 가운데, 중심의 형상들은 서로에게 기대어 하나의 작은 영역을 만들어낸다.
画面的中心存在着如巢一般凝缩的形态,以及仿佛包覆其上的形象。与其说那是特定的生命体,不如说它像是保护并照看自己内侧之物的存在。周围红而粗糙的表面与缠绕的线条令人联想到不断变化的环境,而中心的形象们彼此倚靠,造出一个小小的领域。
이곳의 둥지는 완전히 안전하거나 외부와 단절된 장소라기보다, 주변의 파편들을 끌어모아 불완전하게 만들어진 임시적인 안식처에 가깝다. 서로 다른 것들이 모여 하나의 자리를 이루고, 그 안에서 다시 무언가를 품고 살아갈 가능성이 만들어진다. 무엇이 보호하고 무엇이 보호받는지, 어디까지가 하나의 생명이고 어디서부터 그것을 둘러싼 환경인지 그 경계 역시 분명하지 않다.
此处的巢,与其说是完全安全或与外界隔绝的场所,不如说更接近一处将周围的碎片聚拢起来、不完整地造成的临时安息之所。彼此不同的事物聚集成一个位置,而在其中,重新怀抱某物并继续存活的可能性得以生成。什么在保护、什么被保护,何处为止是一个生命、从何处开始是围绕它的环境——这些边界同样并不分明。
자연에서 발견되는 둥지와 인간이 만들어내는 거처의 모습은 이 장면 안에서 희미하게 겹쳐진다. Shelter는 자연과 인간 어느 한쪽에 속하는 풍경이라기보다, 서로 다른 존재들이 세계 안에서 관계를 맺으며 머물고, 품고, 지키기 위한 작은 영역을 만들어가는 원초적인 모습을 담고 있다.
自然中发现的巢,与人类所造出的居所之貌,在这个场景中隐约重叠。《Shelter》与其说是属于自然或人类任何一方的风景,不如说它承载着一种原初的样貌:不同的存在在世界之中结成关系,并造出一个用以停留、怀抱与守护的小小领域。
Holding Light
2026年/水牛皮上水彩/660×870×35mm
이 작업은 빛을 직접 재현하기보다, 빛이 존재했음을 드러내는 '막'에 주목한다. 빛은 그 자체로 손에 잡히거나 고정된 형태를 가진 물질이 아니다. 피부에 닿고, 식물의 표면을 통과하고, 사물에 반사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그 존재를 감각한다. 결국 빛은 언제나 어떤 물질과의 접촉을 통해 모습을 드러낸다.
这件作品并非直接再现光,而是关注那层显示出光曾经存在的"膜"。光本身并不是可以握在手中、或具有固定形态的物质。唯有在触及皮肤、穿过植物的表面、于事物上反射的瞬间,我们才终于感知到它的存在。归根结底,光总是通过与某种物质的接触而显现其样貌。
이러한 생각에서 나는 동물의 가죽을 하나의 '막'으로 바라보았다. 가죽은 한때 생명체의 가장 바깥에서 빛과 공기, 온도와 습도 같은 외부 세계를 직접 받아들이던 표면이다. 여기서 가죽은 특정 동물의 피부를 재현하거나 신체성을 강조하기 위한 재료라기보다, 빛과 생명, 외부 세계가 서로 맞닿아 있던 원초적인 경계면으로 기능한다.
由此,我将动物的皮革视为一层"膜"。皮革曾经处于生命体的最外侧,是直接承接光与空气、温度与湿度等外部世界的表面。在这里,皮革与其说是用以再现特定动物的皮肤或强调身体性的材料,不如说它作为光、生命与外部世界曾彼此相接的原初界面而发挥作用。
그 위에는 기름이 아닌 물을 사용하는 수채의 방식으로 자연에서 채집한 파편들을 새겨 넣었다. 식물과 생명체, 지형을 연상시키는 형상들은 본래의 장소와 질서에서 떨어져 나와 가죽 위를 떠돌고, 겹치고, 서로에게 스며든다. 이 파편들은 아직 하나의 풍경으로 정착하지 않은 채 새로운 자연을 이루기 직전의 상태에 머문다.
在其之上,我以使用水而非油的水彩方式,刻入了从自然中采集的碎片。令人联想到植物、生命体与地形的形象,脱离原本的场所与秩序,在皮革上漂游、重叠,并彼此渗透。这些碎片尚未定着为一片风景,停留在即将形成新的自然之前的状态。
따라서 이 작업에서 가죽은 하나의 완성된 세계를 담는 화면이라기보다, 세계가 만들어지기 전 파편들을 잠시 품고 있는 막에 가깝다. 빛을 받아들였던 막 위에 자연의 파편들이 모이고 흩어지며, 아직 이름 붙지 않은 관계를 형성한다. 나는 이를 통해 완결되고 정돈된 자연이 아니라, 빛과 물질, 생명의 파편들이 뒤섞이며 하나의 세계가 되어가는 태초의 상태를 담고자 했다.
因此在这件作品中,皮革与其说是容纳一个已完成世界的画面,不如说更接近一层在世界被造出之前暂时怀抱着碎片的膜。在曾经承接光的膜之上,自然的碎片聚拢又散开,形成尚未被命名的关系。我希望借此承载的,并非完结而整饬的自然,而是光、物质与生命的碎片彼此混杂、逐渐成为一个世界的太初状态。
展场发放的资料,会随着展期结束而无法再读到。art on 在获得许可的前提下,以原文形式保存这些文本,使艺术家的话语在展览结束之后依然可供参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