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note

Artist’s Note|ゴヨン「A Hidden Realm」作家自身によるテキスト

白い壁に、縦位置の油彩4点が等間隔で一列に並んで掛けられている。連作「The Unfinished Habitat」
このテキストについてこの文章は、2026年9月、AWASE gallery(東京・新宿)でのゴヨンの個展「A Hidden Realm」の会場で配布されていた、作家自身によるテキストです。原文は韓国語。日本語訳は art on 編集部によるものです。

Substratum

Substratum

2026年/油彩/1622×3910×40mm

Substratum은 이번 전시의 모든 내용을 아우르는 대표작이다. 이번 전시에서 큰 주제가 되는 대지와 해양, 그리고 그 모든 존재를 비추는 빛의 감각을 하나의 장면으로 응축한 작업이다. 땅과 하늘, 바다라는 익숙한 경계가 뒤집히고 뒤섞인 채 공존하는, 현실의 표면 너머 어딘가에 존재할 법한 세계를 상상하며 시작되었다. 화면을 이루는 형상들은 대지와 토양, 식물과 생명체 등 현실 세계에서 발견한 자연 만물의 파편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이들은 본래의 장소와 질서에서 떨어져 나와 서로 얽히고 중첩되며 새로운 생태계를 형성한다.

「Substratum」は、本展のすべての内容を束ねる代表作です。この展覧会の大きな主題である大地と海洋、そしてそのすべての存在を照らす光の感覚を、ひとつの場面に凝縮した作品です。土と空、海という見慣れた境界がひっくり返り、混ざり合ったまま共存する、現実の表面の向こう側にありそうな世界を想像することから始まりました。画面をかたちづくる形象は、大地と土壌、植物や生命体など、現実の世界で見つけた自然の万物の断片から出発しています。けれどもそれらは本来の場所と秩序から離れ、たがいに絡み合い、重なり合って、新しい生態系を形づくります。

화면은 땅 속 깊은 곳의 뿌리와 생태계로 보이는 동시에 바다속을 연상시킨다. 또한 하늘과 땅이 전복된 공간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모호함을 통해 우리가 세계를 구분하는 경계가 사라진 상태를 그리고자 했다. 땅과 바다, 식물과 동물, 생명과 무생물처럼 서로 분리되어 있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사실은 하나의 세계를 구성하는 물질이며, 끊임없이 다른 형태로 뒤섞이고 순환하고 있다.

画面は、地中深くの根と生態系のように見えると同時に、海の中を思わせます。また、空と地面が反転した空間のようにも感じられます。こうした曖昧さを通して、私たちが世界を区分する境界が消えた状態を描こうとしました。土と海、植物と動物、生命と無生物のように、たがいに分かたれていると思われているものが、実はひとつの世界を構成する物質であり、絶えず別のかたちへと混ざり合い、循環しています。

그 안에서 새를 닮은 형상은 화면 어딘가를 주시한다. 그것은 특정한 생명체라기보다 이 낯선 세계를 관조하는 존재이자, 세계 곳곳에 깃든 어떤 영혼의 흔적처럼 자리한다. 이 시선으로 인해 풍경은 단순히 버려진 파편들이 모인 장소가 아니라, 스스로 감각하고 살아 움직이는 하나의 유기체처럼 변한다.

そのなかで、鳥に似た形象が画面のどこかを見つめています。それは特定の生命体というより、この見知らぬ世界を静かに眺める存在であり、世界のあちこちに宿る何かの魂の痕跡のように置かれています。このまなざしによって、風景は単に捨てられた断片が集まった場所ではなく、みずから感覚し、生きて動くひとつの有機体のように変わります。

제목 Substratum은 표면 아래에 놓인 ‘기층’, 혹은 어떤 존재를 성립시키는 근원적인 토대를 의미한다. 내가 상상한 것은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세계의 아래, 보이는 표면 너머에 잠재된 또 하나의 세계이다. 그곳에서는 현실에서 분리되어 있던 존재들의 경계가 느슨해지고, 흩어진 파편들이 다시 관계를 맺는다. Substratum은 그렇게 세계의 밑바닥에서 서로 다른 존재들이 하나의 풍경으로 합일되는 순간, 혹은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세계의 원형을 그려낸다.

「Substratum」という題名は、表面の下に横たわる「基層」、あるいはある存在を成り立たせる根源的な土台を意味します。私が想像したのは、私たちが足をつけている世界の下、見える表面の向こうに潜むもうひとつの世界です。そこでは現実で分かたれていた存在たちの境界がゆるみ、散らばった断片がふたたび関係を結びます。「Substratum」は、そうして世界の底で異なる存在たちがひとつの風景へと合わさる瞬間、あるいはまだ名づけられていない世界の原型を描き出します。

Returning Without Arrival

Returning Without Arrival

2026年/油彩/970×970×35mm

화면에는 가재와 물고기처럼 해양을 연상시키는 생명체들이 등장하지만, 그 사이에는 날개를 지니고 있는 형상이 함께 존재한다. 절벽이나 암석처럼 보이는 표면은 동시에 깊은 바닷속의 지형처럼 느껴지고, 물과 땅의 이미지가 서로 침투하며 하나의 불분명한 공간을 만들어낸다.

画面には、ザリガニや魚のように海を思わせる生命体が登場しますが、その間には翼をもつ形象も一緒に存在しています。崖や岩石のように見える表面は、同時に深い海の中の地形のようにも感じられ、水と土のイメージがたがいに浸透しあって、ひとつの不分明な空間をつくり出します。

서로 다른 장소에 속해 있을 법한 존재들은 이곳에서 자연스럽게 한데 모인다. 그들은 어느 한 방향을 향해 움직이는 듯하면서도 명확한 목적지에 도달하지 않고, 화면 안을 천천히 맴돌고 유영한다. 몇몇 형상은 같은 곳을 응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시선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는 드러나지 않는다. 이 미묘한 방향성은 화면 안에 보이지 않는 중심이 존재하는 듯한 감각을 만든다.

本来なら別々の場所に属しているはずの存在たちが、ここでは自然にひとつに集まります。彼らはどこかひとつの方向へ動いているようでいて、明確な目的地には到達せず、画面のなかをゆっくりと巡り、漂っています。いくつかの形象は同じところを見つめているように見えますが、その視線の先に何があるのかは明かされません。この微妙な方向性が、画面のなかに見えない中心があるかのような感覚をつくります。

나는 이 풍경이 구체적인 장소로 확정되기보다, 바닷속이면서 절벽이고 동시에 어느 곳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는 공간으로 남기를 바랐다. 물속을 헤엄치는 것인지, 땅 위를 이동하는 것인지조차 모호한 채 생명체들은 서로의 주변을 지나고, 모이고, 다시 흩어진다. 서로 다른 세계에서 온 파편들은 그렇게 잠시 같은 흐름 안에 놓인다.

私はこの風景が具体的な場所として確定されるより、海の中でありながら崖でもあり、同時にどこにも完全には属さない空間として残ることを願いました。水の中を泳いでいるのか、地の上を移動しているのかさえ曖昧なまま、生命体たちはたがいのそばを過ぎ、集まり、また散っていきます。異なる世界から来た断片は、そうしてしばらく同じ流れのなかに置かれます。

제목 Returning Without Arrival은 돌아가고 있지만 끝내 도착하지 않는 움직임을 암시한다. 이들에게 돌아간다는 것은 반드시 이전의 장소로 되돌아가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어쩌면 끊임없이 이동하고 순환하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귀환일 수 있다. 작품은 도착점이 사라진 세계에서 서로 다른 존재들이 같은 방향을 감지하고 그 주변을 유영하는 순간을 그린다.

「Returning Without Arrival」という題名は、帰っているけれど、ついに到着しない動きを示しています。彼らにとって帰るということは、必ずしも以前の場所へ戻ることを意味しません。もしかすると、絶えず移動し循環する過程そのものが、ひとつの帰還なのかもしれません。作品は、到達点が消えた世界で、異なる存在たちが同じ方向を感じ取り、そのまわりを漂う瞬間を描いています。

Ripening

Ripening

2026年/油彩/1033×970×35mm

Ripening은 무언가가 내부에서 천천히 차오르고, 익어가며 다른 상태로 변화하는 순간을 상상하며 시작한 작업이다. 화면 속 형상들은 식물이나 열매, 곤충과 조직처럼 익숙한 생명체의 일부를 떠올리게 하지만, 어느 하나의 대상으로 명확하게 규정되지는 않는다. 서로 다른 파편들은 흘러내리고, 매달리고, 표면을 뚫고 자라나는 듯한 모습으로 뒤엉키며 하나의 낯선 생태를 만들어낸다.

「Ripening」は、何かが内側からゆっくりと満ち、熟しながら別の状態へ変わっていく瞬間を想像して始めた作品です。画面のなかの形象は、植物や果実、昆虫や組織のように見慣れた生命体の一部を思い起こさせますが、どれかひとつの対象として明確に規定されることはありません。異なる断片たちは、流れ落ち、ぶら下がり、表面を突き破って育つような姿で絡み合い、ひとつの見知らぬ生態をつくり出します。

‘익는다’는 것은 완성을 향해가는 과정인 동시에, 가장 충만해진 상태에서 곧 다른 형태로 넘어가게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열매가 익은 뒤 떨어지고 부패하여 다시 토양의 일부가 되듯, 자연에서 성숙과 소멸은 서로 분리된 사건이 아니라 하나의 순환 안에 놓여 있다. 화면의 짙은 붉은색과 유기적인 형상들 역시 풍요롭고 생명력 있는 동시에 어딘가 과잉되고 기이한 감각을 품고 있다.

「熟す」ということは、完成へ向かう過程であると同時に、もっとも満ち足りた状態から、まもなく別のかたちへ移っていく瞬間でもあります。果実が熟したのちに落ち、腐ってふたたび土壌の一部になるように、自然において成熟と消滅はたがいに切り離された出来事ではなく、ひとつの循環のなかに置かれています。画面の濃い赤色と有機的な形象もまた、豊かで生命力にあふれていると同時に、どこか過剰で奇妙な感覚を宿しています。

제목 Ripening은 이러한 변화의 중간 상태를 가리킨다. 아직 완전히 도달하지도, 사라지지도 않은 채 내부에서 계속해서 변화가 진행되고 있는 시간이다. 이 작품에서 생명은 고정된 형태로 존재하기보다 자라고, 익고, 흘러내리고, 다시 다른 무언가가 되어가는 과정으로 나타난다.

「Ripening」という題名は、こうした変化の中間の状態を指しています。まだ完全に到達もせず、消え去りもしないまま、内側で変化が続いている時間です。この作品において生命は、固定されたかたちで存在するというより、育ち、熟し、流れ落ち、また別の何かになっていく過程として現れます。

The Unfinished Habitat

The Unfinished Habitat

2026年/油彩/各727×530×35mm(4点連作)

The Unfinished Habitat은 인간의 세계에서 발견한 비생물적 파편들을 조합하며 만들어진 네 점의 연작이다. 건축물과 음식, 옷의 주름, 사물의 표면 등 일상에서 수집한 이미지들은 본래의 맥락에서 벗어나 서로 결합하며 낯선 풍경을 만들어낸다. 흥미롭게도 인간의 흔적으로 구성된 이 장면은 오히려 무너져가는 건축물이나 폐허, 혹은 아직 생명이 정착하지 않은 행성처럼 황폐하고 불완전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The Unfinished Habitat」は、人間の世界で見つけた非生物的な断片を組み合わせてつくられた4点の連作です。建築物や食べ物、衣服の皺、事物の表面など、日常で集めたイメージは本来の文脈から外れ、たがいに結びついて見知らぬ風景をつくり出します。興味深いことに、人間の痕跡で構成されたこの場面は、むしろ崩れていく建築物や廃墟、あるいはまだ生命が定着していない惑星のように、荒涼として不完全な姿で現れました。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번민하며, 현실의 파편들을 재조합해 내가 염원하는 이상적인 장면에 가까워지고자 했다. 그러나 그 과정 끝에 나타난 것은 완전하고 조화로운 세계라기보다 황폐함과 생명력이 기묘하게 공존하는 풍경이었다. 무너지고 소멸해가는 듯한 공간 속에서도 무언가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다른 가능성을 향해 나아간다. 결국 이 작업은 이상을 향한 염원과 현실의 불완전함, 소멸과 생성이 동시에 뒤엉켜 있는 하나의 혼돈적인 장면으로 남게 되었다.

理想と現実のあいだで絶えず思い悩みながら、現実の断片を組み替えて、自分が願う理想的な場面に近づこうとしました。けれどもその過程の果てに現れたのは、完全で調和のとれた世界というより、荒廃と生命力が奇妙に共存する風景でした。崩れ、消滅していくように見える空間のなかでも、何かは絶えず動き、別の可能性へ向かって進んでいきます。結局この作品は、理想への願いと現実の不完全さ、消滅と生成が同時に絡み合った、ひとつの混沌とした場面として残ることになりました。

네 개의 화면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구(球)는 달걀노른자의 둥근 파편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원래의 맥락에서 떨어져 나온 구는 더 이상 하나의 대상으로 규정되지 않는다. 알이나 구슬이 될 수도, 인간이나 생명의 흔적으로 읽힐 수도 있다. 정지된 듯한 풍경과 달리 구들은 화면 곳곳을 떠돌며 다른 장소를 찾아 이동하는 방랑자처럼 존재한다. 황폐한 공간 속에서도 이들의 움직임은 미세한 생동감과 아직 소멸하지 않은 가능성을 만들어낸다.

4つの画面に繰り返し登場する球は、卵黄の丸い断片から出発しました。けれども本来の文脈から離れた球は、もはやひとつの対象として規定されません。卵にも玉にもなりうるし、人間や生命の痕跡として読まれることもあります。静止したように見える風景とは違い、球たちは画面のあちこちを漂い、別の場所を探して移動する放浪者のように存在します。荒廃した空間のなかでも、その動きは微細な生気と、まだ消滅していない可能性をつくり出します。

전시장에서 이 작품은 자연의 파편으로 이루어진 Substratum과 마주한다. 두 작품은 각각 인간과 자연이라는 서로 다른 세계에서 출발하지만, 결국 하나의 공간 안에서 서로 얽혀 존재한다. 자연과 인간을 대립시키기보다, 서로 다른 존재들이 같은 세계를 구성하며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는 두 개의 풍경으로 바라볼 수 있다.

会場でこの作品は、自然の断片からなる「Substratum」と向かい合っています。二つの作品はそれぞれ人間と自然という異なる世界から出発しますが、結局はひとつの空間のなかでたがいに絡み合って存在します。自然と人間を対立させるのではなく、異なる存在たちが同じ世界を構成し、絶えず影響を与えあう二つの風景として見ることができます。

Shelter

Shelter

2026年/油彩/530×409×35mm

이번 전시에서 반복해서 등장하는 무언가의 존재들은 서로 다른 환경과 세계에서 출발하지만, 주변의 것들과 관계를 맺으며 새로운 형태와 장소를 만들어간다. Shelter는 그 흐름 속에서, 흩어진 것들이 서로 얽혀 하나의 작은 세계를 이루고 그 안에서 무언가를 품고 지키려는 모습을 상상하며 시작한 작업이다.

本展で繰り返し登場する何ものかの存在たちは、それぞれ異なる環境と世界から出発しながら、周囲のものと関係を結び、新しいかたちと場所をつくっていきます。「Shelter」は、その流れのなかで、散らばったものたちがたがいに絡み合ってひとつの小さな世界をなし、そのなかで何かを抱き、守ろうとする姿を想像して始めた作品です。

화면의 중심에는 둥지처럼 응축된 형태와 그 위를 감싸듯 자리한 형상이 존재한다. 그것은 특정한 생명체라기보다, 자신의 안쪽에 있는 무언가를 보호하고 보살피는 존재처럼 보인다. 주변의 붉고 거친 표면과 뒤엉킨 선들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을 연상시키는 가운데, 중심의 형상들은 서로에게 기대어 하나의 작은 영역을 만들어낸다.

画面の中心には、巣のように凝縮されたかたちと、その上を包み込むように位置する形象があります。それは特定の生命体というより、自分の内側にある何かを保護し、いたわる存在のように見えます。周囲の赤くざらついた表面と、絡み合った線が絶えず変化する環境を思わせるなかで、中心の形象たちはたがいに寄りかかり、ひとつの小さな領域をつくり出します。

이곳의 둥지는 완전히 안전하거나 외부와 단절된 장소라기보다, 주변의 파편들을 끌어모아 불완전하게 만들어진 임시적인 안식처에 가깝다. 서로 다른 것들이 모여 하나의 자리를 이루고, 그 안에서 다시 무언가를 품고 살아갈 가능성이 만들어진다. 무엇이 보호하고 무엇이 보호받는지, 어디까지가 하나의 생명이고 어디서부터 그것을 둘러싼 환경인지 그 경계 역시 분명하지 않다.

ここでの巣は、完全に安全であったり外部から断たれていたりする場所というより、周囲の断片をかき集めて不完全につくられた、一時的な安息の場所に近いものです。異なるものたちが集まってひとつの場をなし、そのなかでふたたび何かを抱いて生きていく可能性が生まれます。何が保護し、何が保護されているのか、どこまでがひとつの生命で、どこからがそれを取り巻く環境なのか、その境界もまた明らかではありません。

자연에서 발견되는 둥지와 인간이 만들어내는 거처의 모습은 이 장면 안에서 희미하게 겹쳐진다. Shelter는 자연과 인간 어느 한쪽에 속하는 풍경이라기보다, 서로 다른 존재들이 세계 안에서 관계를 맺으며 머물고, 품고, 지키기 위한 작은 영역을 만들어가는 원초적인 모습을 담고 있다.

自然のなかに見つかる巣と、人間がつくり出す住まいの姿が、この場面のなかでかすかに重なります。「Shelter」は、自然と人間のどちらか一方に属する風景というより、異なる存在たちが世界のなかで関係を結び、留まり、抱き、守るための小さな領域をつくっていく、原初的な姿を写しています。

Holding Light

Holding Light

2026年/水牛の革に水彩/660×870×35mm

이 작업은 빛을 직접 재현하기보다, 빛이 존재했음을 드러내는 ‘막’에 주목한다. 빛은 그 자체로 손에 잡히거나 고정된 형태를 가진 물질이 아니다. 피부에 닿고, 식물의 표면을 통과하고, 사물에 반사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그 존재를 감각한다. 결국 빛은 언제나 어떤 물질과의 접촉을 통해 모습을 드러낸다.

この作品は、光を直接再現するのではなく、光が存在したことを示す「膜」に注目しています。光はそれ自体として手に取れたり、固定されたかたちをもったりする物質ではありません。皮膚に触れ、植物の表面を通り抜け、事物に反射する瞬間に、私たちはようやくその存在を感覚します。結局のところ光は、いつも何らかの物質との接触を通してその姿を現します。

이러한 생각에서 나는 동물의 가죽을 하나의 ‘막’으로 바라보았다. 가죽은 한때 생명체의 가장 바깥에서 빛과 공기, 온도와 습도 같은 외부 세계를 직접 받아들이던 표면이다. 여기서 가죽은 특정 동물의 피부를 재현하거나 신체성을 강조하기 위한 재료라기보다, 빛과 생명, 외부 세계가 서로 맞닿아 있던 원초적인 경계면으로 기능한다.

こうした考えから、私は動物の皮をひとつの「膜」として見ました。皮はかつて、生命体のもっとも外側で、光と空気、温度や湿度のような外部の世界を直接受け入れていた表面です。ここでの皮は、特定の動物の皮膚を再現したり身体性を強調したりするための素材というより、光と生命、外部の世界がたがいに触れ合っていた原初的な境界面として機能します。

그 위에는 기름이 아닌 물을 사용하는 수채의 방식으로 자연에서 채집한 파편들을 새겨 넣었다. 식물과 생명체, 지형을 연상시키는 형상들은 본래의 장소와 질서에서 떨어져 나와 가죽 위를 떠돌고, 겹치고, 서로에게 스며든다. 이 파편들은 아직 하나의 풍경으로 정착하지 않은 채 새로운 자연을 이루기 직전의 상태에 머문다.

その上には、油ではなく水を使う水彩の方法で、自然から採集した断片を刻み込みました。植物や生命体、地形を思わせる形象は、本来の場所と秩序から離れて皮の上を漂い、重なり、たがいに染み込んでいきます。これらの断片は、まだひとつの風景として定着しないまま、新しい自然をなす直前の状態にとどまっています。

따라서 이 작업에서 가죽은 하나의 완성된 세계를 담는 화면이라기보다, 세계가 만들어지기 전 파편들을 잠시 품고 있는 막에 가깝다. 빛을 받아들였던 막 위에 자연의 파편들이 모이고 흩어지며, 아직 이름 붙지 않은 관계를 형성한다. 나는 이를 통해 완결되고 정돈된 자연이 아니라, 빛과 물질, 생명의 파편들이 뒤섞이며 하나의 세계가 되어가는 태초의 상태를 담고자 했다.

したがってこの作品において皮は、ひとつの完成した世界を収める画面というより、世界がつくられる前の断片をしばし抱いている膜に近いものです。光を受け入れていた膜の上で自然の断片が集まり、散らばりながら、まだ名づけられていない関係を形づくります。私はこれを通して、完結し整えられた自然ではなく、光と物質、生命の断片が混ざり合いながらひとつの世界になっていく、太初の状態を写し取ろうとしました。

展覧会レポートを読む

会場で配布されていた資料は、会期の終了とともに読めなくなります。art on は、展覧会が終わったあとも作家の言葉が参照できるように、許可を得たものを原文のまま保存してい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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